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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모스, 쉬거, 보안관

by 도곡동재떨이 2024. 2. 12.

모스

르웰린 모스는 베트남 전쟁 저격수 출신으로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핵심등장인물이다. 불의를 보면 참지 않고 호기심에 가득하며 노련한 직관가 판단에 의해 사건을 추격하고 최선의 선택을 추구한다. 텍사스 갱스터가 남긴 돈가방을 줍는 장면에서는 인간의 욕망과 탐욕을 대변하기도 하는데 현장에 남아 있던 생존자를 구출하기 위해 물을 주려다 현장에 나타난 갱들에 추격을 받게 된다. 이는 인류가 지닌 도덕적 약 심을 상징하며 이익과 도덕사이의 갈등 속에서 나름의 균형을 추구하는 보편적인 현대인을 대표하게 된다. 그의 거침없는 활약과 노련미 넘치는 행동은 영웅적 설화의 구성을 따라가는 듯 보이나 거스를 수 없는 운명 앞에서 어이없게 생을 마감하게 된다. 한 인간이 제아무리 처절하고 열심히 살아왔다 한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소용돌이에 무릎을 꿇게 만드는 허무주의를 상기시킨다. 안톤 쉬거나 추구하는 무작위적인 선택에 의해 매번 타격을 입으며 쓸쓸한 결말을 맞이하는 그의 모습을 통해 통제할 수 없는 거시적인 흐름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모스자체는 기본적으로 변칙적이고 정반합의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진화하는 유형이지만 그러한 자만심에 도취한 나머지 자잘한 실수를 하거나 상황에 맞지 않는 판단을 내림으로서 그의 불완정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남성미 넘치는 태도의 일환으로 세상의 변혁을 다스릴 것 같지만 그러한 자신감은 오래가지 않는다. 만약 그가 매사에 본인 스스로를 냉정하게 다스렸다면 보다 나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겠지만 낭만주의에 심취한 마초적인 투쟁 과정 그 자체에 중독되어 버린다. 현대 인간 세상에서 성공가도를 달려온 수많은 인물들이 존재했지만 단 한 번의 판단 미스로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들이 태반이다. 이는 즉 현실세계가 결코 호락호락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인류 문명의 발전은 모스와 같은 도전정신 및 탐욕이 동력으로 작용한 것은 분명 하나 대부분은 운명 앞에 요절하고 마는 나약함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가장 보편적인 일반인을 상징하며 관객들로 하여금 적지 않은 충격을 받도록 설계된 인물 유형이다.

쉬거

안톤 쉬거는 겉보기엔 이해할 수 없는 사고를 지닌 인물로 비치지만 그 누구보다도 뚜렷한 원칙과 질서를 가지고 행동하는 일관성 있는 캐릭터이다. 금욕적인 탐욕에 관심 없으며 오로지 동전 던지기를 통한 결과로써 행동 유무를 결정하는 그는 인류 역사 자체를 상징한다. 도덕적 선의를 통한 구원이나 양심에 의한 행동에 만족감을 느끼는 그런 타입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개인의 운명은 윤리적 타당성과 별개로 무작위 하게 나타나며 예측할 수 없는 수만 가지 우연들이 모여 앞으로의 미래가 결정되는 모습을 강조한다. 이는 인류가 쌓아온 전세기적 업적을 한순간에 뭉개뜨리며 그저 그런 우연의 결과일 뿐 어떠한 의미를 상정하는 것을 단호하게 거절한다.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안톤 쉬거는 단 한 번의 흩트러짐 없이 일관된 자세로 움직이며 거룩한 사회적 함의와 정의의 투혼을 함락시킨다. 인간의 나약함을 지적하고 그간 쌓아온 도덕적 양심들을 무용지물로 만듦으로써 인생에 대해 다시금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즉 어차피 정해진 운명대로 사는 것이니 아등바등할 것 없이 초연한 자세로 현실세계를 마주할 수 있도록 나름의 지혜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한들 대다수의 사람들은 모스의 삶으로 돌아오게 되며 매일매일의 일상이 베트남전처럼 흘러갈 것도 분명하다. 어차피 필연적인 혼돈을 수반하는 아수라장의 사회라면 가만히 앉아 있기보다는 모스처럼 사냥에 나서는 것도 인생을 즐기는 한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때로는 쉬거처럼 개인적 판단을 제삼자에게 맡기며 순응하는 것도 변화무쌍한 세계에서 살아남은 하나의 생존법일 수 있다.

보안관

보안관 에드 톰 벨은 극 중에서 가장 낭만주의적인 인물로 동양적 세계관에서 나올법한 극진한 도덕적 판타지를 추종한다. 영화 속 등장 비중이 높지는 않지만 짧은 등장만으로도 임팩트 있는 대사를 전달하며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텍사스 출신 특유의 억양과 느릿느릿한 미사여구가 더해져 한껏 매력을 뽐내는 그는 보안관으로서는 한참 모자란 능력임에도 끝까지 사건을 추궁한다. 그의 시선에서 안톤 시거의 기이한 행위는 도저히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며 이는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노후한 인간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직 과거의 방식과 향수에 젖어 현실을 판단하고 세상의 변혁을 인정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인물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보안관 벨과 같은 사고방식을 지녔다면 문제없지만 폭력과 비윤리적 행위들이 난무하는 와중에 아무런 대처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한 주체로 전락하며 사회에 대한 환멸을 고조시킨다. 사건을 쫓고 해결해야 하는 핵심 주체이지만 모스와 쉬거나 이 서 벌어지는 빠른 전투의 전개양상을 따라잡지 못한다. 그가 어딘가에 도착했다면 이미 사건이 벌어진 직후이며 항상 한 발 늦는 모습에 쉬 거와 한패인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