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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의 미로 스페인 내전, 지하왕국, 게릴라전

by 도곡동재떨이 2024. 2. 14.

스페인 내전

판의 미로는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걸작 중 하나입니다. 1944년에 발발한 스페인 내전은 공화세력과 프랑코 파시스트 정권의 대립을 주제로 하며 이후 이어지는 제2공화국의 성공적인 안착까지 의미하는 역사 판타지 장르입니다. 영화는 시종일관 지하왕국이라는 판타지와 현실 세계에 잔존하는 전쟁 사이를 넘나드는데 극 중 주인공 오필리아의 시선으로 펼쳐지게 됩니다. 그의 아버지 비델은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견인하는 독재체제의 장교로서 빨치산에서 게릴라전을 수행하는 저항군들을 소탕합니다. 스페인 내전으로 망명한 게릴라들은 멕시코에 임시정부를 세우기도 하는데 이 영화가 멕시코영화인 것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과 이어지는 부분입니다. 게릴라들은 주로 의사, 변호사, 예술가 등의 전문직 종사자들이 많았는데 이들이 멕시코로 이주한 후 사회적으로 많은 공헌을 이루었습니다. 감독은 유년시절부터 이런 스페인 지식인 출신 영화감독의 영향을 받았으며 이때부터 쌓아온 기록물을 한데 모아 역사판타지인 판의 미로를 제작하게 됩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 덕분에 15세 관람가 영화인데도 분위기는 매우 어둡고 차갑습니다. 실제로 반정부군에 대한 탄압의 무자비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오펠리아의 아버지 비델 장교의 모습을 통해 묘사됩니다. 그는 아무런 증거 없이 단지 의심이 된다는 이유로 무고한 시민을 벌주기도 하고 의붓딸인 오펠리아에게 차갑게 대하는 등 군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무뚝뚝한 성격을 드러냅니다. 이는 스페인 내전의 파시스트 정권을 무차별적으로 비난하기보다는 군인 정신의 입각한 나머지 이성적 판단을 못하는 안타까운 존재로 인식하는 부분입니다. 오로지 명령에 복종하는 명예로운 군벌로서 파르티잔을 토벌하는 당시 혼잡했던 스페인의 상황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격동의 소용돌이를 지하왕국이라는 판타지적 소재를 통해 드러낸 점 높은 작품성을 인정받아 다수의 영화제에서 수상을 받았고 흥행에 있어서도 나쁘지 않은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지하왕국

지하왕국은 판의 미로의 판타지적 성격을 위한 배경으로서 오펠리아는 현실에서 환생한 왕국의 공주였습니다. 지하왕국은 제2공화정을 의미하며 스페인내전 이후의 역사의 복선이 됩니다. 오펠리아는 자신의 남동생을 데리고 도주한 혐의로 아버지 비델에 의해 응징을 당하게 됩니다. 이로 인한 유혈로 인해 왕국의 문이 열리고 지하세계서 환생한 공주는 제2의 인생을 맞이하게 됩니다. 여기서의 피는 희생을 의미하며 유의미한 역사적 변혁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인해 작용하는 점을 지적합니다. 그 안에는 왕과 왕비 및 신하들이 그녀를 웅장하게 맞이하게 되고 이는 독재정치를 벗어난 스페인의 찬란한 미래를 상징합니다. 지하왕국으로 가는 과정은 험난했으며 여러 괴물들과 현실세계의 전쟁 그리고 아버지의 위협등이 난무하는 등 어린 오펠리아는 이런 냉혹한 실정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런 일련의 상상과 현실의 병치는 판의 미로를 돋보이게 하는 서사구조로서 별개의 공간에서 상호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제2공화정으로 가는 과도기적 단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에 의해 희생되었으며 선악의 구분 없이 모두가 비참한 결과를 맞이한 아픈 역사를 비교적 신비스럽게 풀어간 감독의 기교가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게릴라전

영화속에서 비델은 악랄한 장교로서 게릴라전을 진입하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산속 별장에서 여러 하녀들과 함께 거주하며 게릴라들의 동태를 주시하지만 머릿속에는 앞으로 태어날 아들만을 생각합니다. 부인의 안위는 전혀 개의치 않으며 그의 업을 이어나갈 미래의 후손만을 생각하는 그는 여러 잔당들의 위협 속에서 불안한 하루를 보내게 됩니다. 하물며 그의 주치의조차 스파이로서 활동하는 반군이었으며 비델의 동향과 전략에 대한 정보들을 몰래 빼돌리게 됩니다. 하지만 눈치 빠른 비델은 그가 처방한 의약품이 반란군이 사용하는 약품과 동일한 점을 발견하고 그를 제거합니다. 이러한 스파이들 덕분인지 조금이라도 의심살 만한 분위기가 느껴지면 아무런 이유 없이 정적들을 처리하였습니다. 동족상잔의 비극적인 아픔은 스페인 내전의 역사적 내막을 스크린위에 드러내며 관객들의 슬픔을 자아냅니다. 상상 속 동화에서도 요정과 괴수들 사이의 추격전이 벌어지는데 기괴하고 무서운 형상을 띄고 있어서 공포 장르로도 편입됩니다. 다만 어디까지나 비유적 판타지로서 표현되는 캐릭터이기에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장르로 치부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전쟁의 공포는 그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고 선악의 구도와 관계없이 모두에게 아픈 상처로 다가옵니다.